egoist/다시 꽂힌 詩

슬픔이 기쁨에게

느루느루 2013. 7. 23. 13:37

 

 

슬픔이 기쁨에게
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- 정호승 -


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.

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.

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

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

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

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 주겠다.

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

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 주질 않은

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죽을 때

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 주지 않은

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

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

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.

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.

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

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

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.

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길 하며

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.

 

 

지금 나는, 사치스러운 삶을 살고 있구나...

 

 

 

'egoist > 다시 꽂힌 詩' 카테고리의 다른 글

노을을 보며  (0) 2013.07.23
철길  (0) 2013.07.23
...  (0) 2013.07.23
사연  (0) 2013.07.23
어딘가가 아프면, 둘 중 하나입니다  (0) 2013.07.23